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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형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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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한자 金琪萬
이명 없음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본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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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의병 포상년도 1995 훈격 애족장
1908년 7~10월간(月間) 정성현(鄭聖玄) 의병진에 가담하여 동지 13명과 함께 전북(全北) 순창(淳昌)·임실군(任實郡) 내에서 의병활동을 하다가 피체(被逮)되어 징역 1년 6월을 받은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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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전북 임실(任實) 사람이다. 정성현(鄭聖玄) 의진에 가담하여 전북 순창(淳昌)·임실 등지에서 활약하였다. 1904~5년간의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일제는 1905년 11월 「을사륵약(乙巳勒約)」을 체결하여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통감부를 설치하여 우리의 내정을 속속 장악하여 갔다. 이후 1907년에 이르면 다시 헤이그 특사사건에 대한 책임을 물어 광무황제를 강제로 퇴위시키는 한편 「정미7조약(丁未7條約)」을 체결하고 군대를 해산시키는 등 식민지화를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하였다. 이러한 소식을 들은 전국 각처의 뜻있는 애국지사들은 의병을 다시 일으켜 무장투쟁을 통해 일본제국주의에 강력하게 저항함으로써 국권회복을 달성하고자 분투하였다. 김기만은 이같은 시기인 1908년 7월 15일 정성현 의진에 투신하여 의병활동을 하였다. 그리하여 같은 해 10월경까지 동지 13명과 함께 총으로 무장하고, 전북 순창·임실군 등을 무대로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다가 붙잡혀 1910년 2월 23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징역 1년 6월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별집 제1집 783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별집 제1집 626면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도움말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순번 성명 이명 출신지 관련사건
1 김기만 - 전라북도 임실(任實) 후기의병
본문
1881년경 전라북도 임실군(任實郡) 일도면(一道面) 중당(中堂) 마을에서 출생하였다. 평소 전라도 일대에서 연초를 팔아 생계를 유지하던 상인 출신이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이 박탈되었으며, 1907년 한일신협약(정미7조약)과 함께 고종이 강제 퇴위하고 군대까지 해산당하는 등 국권 상실이 현실화하자 전국에서 항일 의병이 일어나 국권 회복 운동을 전개하였다. 당시 임실에서도 정성현(鄭成鉉)이 의병부대를 결성하였는데, 거의의 뜻을 함께하고자 참여하였다. 이후 정성현 의병부대는 이석용(李錫鏞) 부대에 합류하였으며, 정성현은 우포장(右捕將)이 되어 의병부대를 이끌었다. 한편, 이석용은 1907년 9월 기삼연이 전라도 일대의 의병부대들을 결집하여 호남창의회맹소를 결성하자 부대를 이끌고 합류하였다. 호남창의회맹소는 기삼연을 맹주로 추대한 뒤 1907년 10월 말부터 다음 해 1월 말까지 치열한 항일 전투를 전개하였다. 이들은 주로 장성·영광·담양·고창·함평·무장 등 전라도 서부 지역을 활동 무대로 하여 각 읍에 상주한 순사주재소와 우편취급소 그리고 거류 일본인들을 습격하였다. 하지만 일제의 대대적인 진압 작전으로 인해 1908년 2월 기삼연이 체포되어 순국한 뒤 여러 의병부대로 분진하여 소규모 유격전을 펼쳐갔다. 이때 이석용 의병부대도 분진하여 독자적으로 소규모 유격전을 펼쳤으나 1908년 9월 임실 전투에서 일본군에 크게 패한 뒤 해산하였다. 의진이 해산 이후에도 정성현의 지휘 아래 13명의 동지들과 함께 순창과 임실 일대에서 항일 전투를 이어갔다. 소규모 단위로 항일 전투를 펼쳐가던 중 추격해 오던 일본군에 체포되어 재판에 넘겨졌다. 결국 1910년 2월 23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이른바 수괴 정성현의 폭동행위를 방조한 죄로 징역 1년 6개월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수형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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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형기록
순번 종류 죄명 처분(주문) 판결기관 판결일 제공
1 판결문 폭동 징역 1년 광주지방재판소전주지부 1910-02-22 국가기록원

묘소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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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정보 1
묘소구분 안내
미확인
  • 해당 유공자는 묘소 위치 확인이 필요한 독립유공자 입니다.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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