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진(義陣) : 의병의 군진. 의병 부대를 배치한 것.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0권(2012년 발간)
권재호는 경북 봉화 출신으로 1896년 1월 을미의병기 안동의병에서 권세연의진(權世淵義陣)의 중군장(中軍將), 1896년 김도화의진(金道和義陣)의 중군장(中軍將) 등을 역임하였다.
1896년 1월 21일 안동의진의 지휘부는 창의대장 권세연(權世淵),부장 곽종석(郭鍾錫, 미취임),중군장 유완(柳碗),선봉장 김옥서(金玉瑞),우익장 권용현(權用賢),좌익장 이운호(李運鎬),좌부장 이의호(李宜鎬) 등을 주축으로 편성되었다. 그러나 1월 26일 안동과 예천의 접경지대에서 안동의진은 관군에 패하고, 이어서 1월 29일 일본군의 진격에 접전조차 못하고 와해되고 말았다.
1896년 3월 7일 대장 권세연은 조직을 보다 전투적인 체제로 개편하여 대장 권세연 이하 도총 유난영(柳蘭榮), 부장 김하림(金夏林), 중군 권재호, 도포장 오선전(吳宣傳) 등으로 체제를 정비하였다. 이러한 권세연의 지휘부 개편은 안동의진의 내부적인 갈등을 해소하고, 그동안 흔들렸던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3월 12일 권세연은 전투에서 패한 책임을 지고 의병장을 사퇴하였다. 이튿날 김도화가 의병장에 취임하였고, 이어서 3월 14일 대장 이후 중군장 권재호,주장 유난영(柳蘭榮),도총 김하림(金夏林),선봉장 유시연(柳時淵),초모장 이충언(李忠彦) 유창식(柳昌植),아장 최세윤(崔世允),지휘장 김흥락(金興洛) 유도성(柳道性) 등으로 지휘부를 편성하였다. 그러나 태봉전투(胎峰戰鬪) 패배 이후 안동부가 일본군의 방화로 불타고 말았다. 4월 초 안동의진은 재기를 위한 진용의 정비를 서둘렀다. 흥해의 최세윤(崔世允)을 좌익장, 영양의병장 김도현(金道鉉)을 부장, 호좌의진의 서상열(徐相烈)을 군사, 이긍연(李兢淵)을 종사관, 그리고 권옥연(權玉淵)을 부장으로 임명하였다.
권재호는 안동의진의 창의 초기에 참여하여 권세연의진의 중군장과 김도화의진의 중군장을 역임하였다. 또 권재호는 호좌의진의 서상열이 경북 북부지역에서 전개한 의병 활동을 지원하였다. 뿐만 아니라 예천회맹(醴泉會盟)에 안동의진의 대표로 참석하였으며, 예천회맹군의 태봉전투에 참가하여 의병 활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處士權公事狀(작성시기 미상)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1권 236면
- 韓末義兵日記(국가보훈처, 2003) 160, 181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2집 15~2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