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7권(1990년 발간)
경북 울진(蔚珍) 사람이다.
그는 어릴 때 5년간 한문공부에 열중하였다고 하며, 그 후 농업에 종사하고 있던 중 1939년 10월 1일 남원수(南源壽)·노하순(盧夏淳)·주영석(朱永錫)·남정성(南情性)·전원강(田元江) 등과 만나 독립운동에 투신하기로 뜻을 모으고 동년 10월 28일 자신의 집에서 회합하여 창유계(暢幽稧)를 조직하였다.
창유계는 일제의 감시망을 피하기 위해 계형태를 가장하여 소규모 조직으로 운영되었으며 일제의 중국침략전쟁이 장기화되면 반드시 일제가 불리한 처지에 놓이게 될 것을 예상하고 이 기회를 이용하여 조국독립을 쟁취할 것을 계획하였다.
창유계는 결성 이후 다섯 차례에 걸쳐 회합을 가지면서 조직의 강화와 반일선전활동에 주력하다가 1943년 3월 일제에 발각되어 조직이 와해되었다. 이때 그도 붙잡혀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8·15광복을 맞아 석방되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1944. 7. 21 대구지방법원)
- 한국독립사(김승학) 전권 59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