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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공자정보

수형기록
관리번호 7761
성명
한자 南福伊
이명 없음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본적
액자프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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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국내항일 포상년도 1991 훈격 애국장
1939.9월 강원도(江原道) 울진(蔚珍)에서 중일전쟁(中日戰爭)이 장기화됨에 따라 비밀결사 창유계(暢幽稧)를 조직하고 조선독립과 농민사회제도의 개혁을 목적으로 동지 규합을 위해 활동하다 피체되어 징역5년을 받고 복역 중 고문의 여독으로 옥중사(獄中死) 순국(殉國)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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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7권(1990년 발간)

경북 울진(蔚珍) 사람이다.

그는 어릴 때 5년간 한문공부에 열중하였다고 하며, 그 후 농업에 종사하고 있던 중 1939년 10월 1일 남원수(南源壽)·노하순(盧夏淳)·주영석(朱永錫)·남정성(南情性)·전원강(田元江) 등과 만나 독립운동에 투신하기로 뜻을 모으고 동년 10월 28일 자신의 집에서 회합하여 창유계(暢幽稧)를 조직하였다.

창유계는 일제의 감시망을 피하기 위해 계형태를 가장하여 소규모 조직으로 운영되었으며 일제의 중국침략전쟁이 장기화되면 반드시 일제가 불리한 처지에 놓이게 될 것을 예상하고 이 기회를 이용하여 조국독립을 쟁취할 것을 계획하였다.

창유계는 결성 이후 다섯 차례에 걸쳐 회합을 가지면서 조직의 강화와 반일선전활동에 주력하다가 1943년 3월 일제에 발각되어 조직이 와해되었다. 이때 그도 붙잡혀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8·15광복을 맞아 석방되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1944. 7. 21 대구지방법원)
  • 한국독립사(김승학) 전권 592면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도움말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순번 성명 이명 출신지 관련사건
1 남복이 자 : 화중(和仲), 이명 : 남용선(南容善) 경상북도 울진(蔚珍) -
본문
1908년 3월 6일 강원도 울진군(蔚珍郡) 울진면(蔚珍面) 정림리(井林里, 현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정림리)에서 남상일(南相一)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영양(英陽)이며, 자는 화중(和仲)이다. 이명은 남용선(南容善)을 썼다. 출생지인 울진면 정림리는 영양 남씨 집성촌이다. 1921년 울진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26년까지 5년 동안 한문을 수학하였다. 이후 농업에 종사하였다.1939년 10월 1일 남원수(南源壽)의 주도로 임시헌(林時憲)·주영석(朱永錫)·남정성(南精性)·전원강(田元江)·장영준(張永俊)·전만수(田萬秀) 등과 함께 울진군 울진면 읍내리(邑內里) 과수원 부근에서 모임을 갖고 독립운동의 방안을 논의하였다. 이 자리에서 남원수가 농촌 재래의 계를 가장한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조국 독립과 신사회 건설에 나설 것을 제안하자, 참석자들과 함께 이에 찬동하고 구체적인 조직 계획에 착수하였다.1939년 10월 29일 자신의 집에서 임시헌·주영석·전만수·전원강·남원수·전병찬(田炳瓚)과 함께 국제 정세를 논의한 결과, 일제와 소련 간의 전쟁을 예견하였다. 그리고 일소전쟁이 발발하면 그 기회를 이용하여 독립운동을 일으킬 것을 결의하였다. 이를 위하여 10월 1일 논의하였던 농촌 재래의 계를 가장한 비밀결사인 창유계(暢幽稧)를 조직하였다. 이들은 과거 울진군에서 조직되었던 울진적색농민조합(蔚珍赤色農民組合)의 실패를 경험 삼아 비밀 엄수와 동지 규합에 힘써 읍면에서 점차 국내 전체로 확대할 것을 결의하였다.창유계는 강원도와 경상도 지역에 비밀조직을 만들고 동지들을 규합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또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연락을 취하기 위해 장세전(張世銓)을 밀사로 중국에 파견하였다. 창유계 계원들은 일제의 식민정책을 비판하고, 국제정세와 독립운동 방안을 논의하며 항일의식을 함양해 나갔다.1940년 5월 울진면 읍내리 면포상 조합 사무실에서 남정성·윤대규(尹大奎)·최연덕(崔淵悳)을 창유계에 가입시키는 등 조직을 확대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이듬해 4월에는 각자 활동 상황을 계회에 보고하고, 동지 획득에 노력할 것, 독서를 통한 지식 함양에 노력할 것 등의 운동 방안을 결의하고 항일의식 함양에 힘을 썼다.1943년 3월 창유계 가운데 한 명이었던 최황순(崔晃淳)의 집에서 남원수·장세전·임시헌·윤대규·주진욱(朱鎭煜)이 ‘우리도 꽃 필 때가 있다’라고 쓴 종이를 들고 촬영한 사진이 일제 경찰에게 발각되어, 계원 102명이 비밀 집회 혐의로 체포되었다. 이때 창유계원들과 함께 일제 경찰에게 붙잡혔다.이후 일제 경찰의 고문으로 인해, 예심이 진행되고 있던 중 장세전·윤대규·주영석·남석순(南石順) 등이 옥중에서 사망하였다. 1944년 7월 21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주진욱·노하순(盧夏淳) 등과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5년을 받았다. 이에 상고하였으나, 1944년 10월 12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어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1945년 1월 11일 옥중에서 사망하였다.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묘소정보

도움말
묘소정보 1
묘소구분 묘소명 소재지
국립묘지 대전현충원 대전광역시 유성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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