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3권(1996년 발간)
평북 철산(鐵山) 사람이다. 1920년대 말과 1930년대 초에 걸쳐서 무장투쟁을 전개한 국민부(國民府)의 특무 제1대장으로 활동하였다.
최효일이 활동한 국민부는 1930년대 남만주지역의 대표적인 독립운동단체이다. 이 단체는 1928년 9월부터 11월 사이에 있었던 3부통합회의가 실패한 후, 동년 12월 신민부(新民府) 군정파(軍政派)·정의부 탈퇴 인사, 참의부(參議府) 주류 세력들이 혁신의회(革新議會)와 유일독립당재만책진회를 조직하자, 정의부를 주축으로 하여 참의부 심용준파(沈龍俊派)·신민부 민정파(民政派) 등을 중심으로 하여 1929년 3월부터 새로운 군정부를 조직하기 위한 회의를 길림성(吉林省)에서 개최하고, 1929년 4월 1일 정의부·참의부·신민부의 해체를 선언하고, 새로이 조직한 단체이다.
최효일이 활동한 국민부에서는 1929년 5월 28일 중앙집행위원회를 구성하고 중앙집행위원회의 위원을 결정하였는데, 당시 선임된 간부 명단을 보면 다음과 같다.
중앙집행위원장 현익철(玄益哲)
민사위원장 김이대 경제위원장 장승언(張承彦)
외교위원장 최동오(崔東旿) 군사위원장 이웅(李雄)
교육위원장 고이허(高而虛) 법무위원장 현정경
교통위원장 김돈(金敦)
중앙집행위원 김진호(金鎭浩)·심용준·이일세(李一世)·이동림(李東林)·
황기룡(黃起龍)·고활신
사령관 이웅
1중대장 양세봉(梁世奉), 2중대장 윤환(尹桓), 3중대장 이태형(李泰馨),
4중대장 김창헌(金昌憲), 5중대장 장철호(張喆鎬), 6중대장 안홍(安鴻),
7중대장 차용륙(車龍陸), 8중대장 김보국(金保國),
중앙호위대장 문시영(文時映) 등이었다.
국민부에서 활동하던 최효일은 박차석(朴次石 : 일명 朴開石)·정주양(鄭柱陽) 등과 함께 1930년 6월 18일 장백현(長白縣)을 출발하여 압록강을 건너 국내로 들어와 군자금을 모집하는 한편, 동년 6월 20일 함남 풍산(豊山)에서 풍산경찰서 내중(內中)주재소 송산저삼(松山猪三) 순사부장을 처단하고 자동차도 습격하다가 일경에 체포되었다.
1932년 4월 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사형을 받고, 6월 6일 형이 확정, 10월 12일 서대문형무소에서 형이 집행되어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조선총독부관보(1932. 10. 22)
- 동아일보(1931. 11. 23)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4집 916면
- 조선일보(1931. 10.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