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견관덕은 남만주 집안현(輯安縣)을 무대로 항일무장투쟁을 펼치다가 일제의 사주를 받은 중국 관병에게 살해되었다. 일제는 1920년 10월 이후 약 5~6개월 간 서북간도에 대규모 병력을 투입해 독립군 및 배일 한인을 탄압한 간도참변을 일으켰다. 그리고 간도참변 후에도 간도 지역에 꾸준히 일정한 군경(軍警)의 병력을 주둔시켜 이주 한인사회를 감시하고 독립군을 탄압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1925년 6월 11일 중국 측과 소위 삼시협정(三矢協定)을 맺어 본격적인 재만 한인 사회에 대한 탄압에 들어갔다. 삼시협정의 내용은 중국측이 한인 독립운동자들을 체포하여 일제에게 넘긴다는 것이었다. 명칭은 국가간의 협정이었으나 그 내용은 마치 상급 기관이 하급 기관에 명령을 내리는 명령문 같은 것이었다. 협정이 맺어진 후 중국 측은 혹독하게 독립군 및 이주 한인을 탄압하였다. 군·관 뿐만 아니라 심지어 민간인들까지 현상금에 눈이 어두워 바로 이웃에 사는 한인들을 살해하거나 무력으로 끌어다 일제측에 넘겼다. 일제의 사주를 받은 중국 측의 이 같은 야만적 행태 때문에 수많은 독립군이 목숨을 잃어야 했다. 따라서 이를 견디다 못한 한국 독립군들은 중국의 관공리들을 향해 여러 장의 통고문을 보내 그들의 행위를 규탄하고 이 같은 행위가 계속 이어질 때는 바로 중국측이 독립군의 적임을 명시했다. 통고문 하단에는 그 때까지 중국측에 의해 목숨을 잃은 독립군의 명단을 기록하였다. 견관덕도 이 같은 중국측의 탄압에 의해 1927년 집안현에서 희생되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日帝侵略下韓國36年史(국사편찬위원회) 제8권 477면
- 독립운동사료(국가보훈처) 중국편 제19집 216~220면
- 東亞日報(1927. 5. 14)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14집 92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