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출옥(假出獄) : 가석방의 전 용어, 형기가 끝나지 않은 죄수를 일정한 조건하에 미리 풀어주는 것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0권(2012년 발간)
만주에서 조직된 대한독립광정단(大韓獨立光正團)을 비롯한 독립운동단체에 소속되어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대한독립광정단은 길림성(吉林省) 장백현(長白縣)에서 성립된 통합 독립군단으로 1922년 4월 대한국민단(大韓國民團),대진단(大震團),태극단(太極團),광복단(光復團)의 일부가 통합하여 조직하였으며, 임강현(臨江縣),무송현(撫松縣) 등 압록강 주변 지역을 근거지로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하는 것과 함께 이주한인의 산업발전을 도모하는 활동을 하였다.
단장은 윤덕보(尹德甫), 부단장 강진건(姜鎭健), 총무 이태걸(李泰杰), 비서 한운섭(韓雲燮), 재무부장 이병율(李秉律), 군사부장 강승경(姜承京), 서무부장 강구쇠(姜九釗), 경호부장 최진용(崔鎭鏞), 의사부장 김문보(金文甫), 권업부장 강명하(姜明河), 문화부장 한동초(韓東超), 통신부장 겸 회계부장 임태선(林泰仙), 위생부장 김진열(金振烈) 등이었다.
1924년 초부터 조직의 체제를 위원제(委員制)로 바꾸고 주변의 이주 한인을 대상으로 한 자치활동에 치중하였으며, 새로운 활로를 모색한다는 방침 하에 통의부(統義府),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의성단(義成團),고본계(固本契) 등 7개 독립운동 단체들과 통합운동을 전개해 동년(同年) 11월 군정부(軍政府)인 정의부(正義府)를 성립시키는데 기여하였다
김병국은 함경북도 풍산군(豊山郡) 웅이면(熊耳面) 문탕평리(文藻坪里) 출신이며, 장백현 14도구(道溝) 탕성리(湯城里)에 거주하였다. 1920년경 대한독립군비단(大韓獨立軍備團)에 입단해 지방통신원으로 활동하고, 1921년 9월 동단(同團) 의용대(義勇隊) 향무부교(餉務副校)로 함남 갑산군(甲山郡) 동인면(同仁面) 함정포리(含井浦里) 소재 주재소를 폭파하고 자금 및 무기를 획득하였다. 1921년 11월 국민단(國民團) 소속으로 함남 삼수군(三水郡) 운전리(雲田里) 소재 주재소를 폭파하고 무기를 노획했으며 주재소 부근 전신주를 파괴하였다. 1922년 음력 윤5월 광정단(光正團) 소속으로 동군(同郡) 호인면(好仁面) 영성리(嶺城里) 소재 주재소(駐在所)를 공격하고 자금 및 무기를 거두었으며, 1923년 음력 2월 동단(同團) 제3서(署) 경시(警視)에 임명되고 동년 9월 군자금 모집 활동에 참여했다가 체포되었다.
이로 인해 김병국은 소위 폭발물취체벌칙(爆發物取締罰則) 위반 및 제령(制令) 제7호 위반 등으로 함흥지방법원에서 징역 15년을 받고 경성형무소(京城刑務所)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5권 321면
- 判決文(平壤覆審法院:1925. 10. 20)
- 假出獄關係書類(국가기록원 소장)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東亞日報(1925. 3. 24)
- 朝鮮日報(1925. 3. 24)
- 新韓民報(1926. 8. 12)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7집 1308~1309, 1313~1314, 1318면
- 중국지역 사료수집 목록(국가보훈처 소장) 제9권 29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