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전남 무안(務安) 사람이다.
1919년 3월 20일 전남 무안군 외읍면(外邑面) 구무안읍(舊務安邑) 장터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무안의 독립만세운동은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던 김한근(金翰根)이 3월 9일 만세소식을 전하면서 추진되었다. 강지석은 1919년 3월 19일 밤 김순기(金順淇)의 집에서 정순홍(丁淳紅), 박상규(朴相奎) 등 수십 여 명과 함께 무안읍 장날인 20일에 독립만세운동을 벌이기로 결의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밤새도록 독립선언서를 작성하고 태극기를 제작하는 등 거사에 만전을 기하였다. 거사 당일인 20일 새벽, 이들은 읍내 각처에 독립선언서와 경고문을 붙여 일제와 친일파들의 자숙을 촉구하는 한편 군중들의 궐기를 촉구하였다. 11시 경, 강지석 등은 남산에 모여 독립선언식을 거행한 다음 읍내를 향하여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오후 1시 경, 그들이 무안공립보통학교 앞을 지날 때, 주재원들에 의해 저지를 받았지만 행진을 계속하여 구무안읍 장터에 도착하였다. 읍내 장터에는 이미 수백의 군중들이 모여 있었다. 주도자들은 그들에게 태극기를 나눠주는 한편,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며 군중들을 주도해 나갔다. 오후 2시경 만세시위대는 500여 명으로 늘어났고 그들은 저마다 태극기를 흔들며 시가지를 행진하며 만세시위의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이때 일제 당국은 만세시위를 탄압하기 위해 무안군수와 목포경찰서장의 진두 지휘 아래 군경을 동원하여 무력으로 시위대를 해산시키고, 주도자들을 체포하였다. 그는 일경에 붙잡혀 이 해 4월 29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소위 보안법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9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1919. 5. 31. 大邱覆審法院)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刑事事件簿
- 3·1獨立運動務安義蹟碑(3·1獨立運動務安義蹟碑建立推進委員會, 19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