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경남 울산(蔚山) 사람이다. 1940년 일본 경도시(京都市) 하경구(下京區)의 철공소에서 근무 중, 일본인의 민족차별에 대항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34년 11일 일본으로 건너가 철공소 직공으로 노동일에 종사하던 김덕남은 일본인의 민족 차별을 체험하면서 점차 항일민족의식을 키워 나갔다. 그리하여 1940년 6월 같은 처지에 있던 동료 김두만(金斗萬), 제약회사 직공인 유귀복(柳貴福) 등과 서로 뜻을 함께 하고, 백두산을 근거지로 삼아 독립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다. 이들은 민족의 자유와 행복을 위해서는 독립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느끼고, 이를 위한 방안으로 중일전쟁으로 일본이 약화된 틈을 노려 다수의 동지를 규합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기로 계획을 세웠다.같은 해 9월 11일 그들은 재차 회합을 가져, 먼저 김두만을 국내로 보내어 독립운동에 필요한 제반 준비를 서두르기로 하고, 귀국후의 연락방법 등에 대해 논의하였다. 그러나 이들의 거사는 사전에 일경에 발각되어 실행에 옮기지는 못하였다. 그는 이 일로 붙잡혀, 1942년 9월 26일 대판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으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8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昭和特高彈壓史(明石博隆·松浦總三編) 中卷 206∼210面
- 日帝侵略下韓國36年史(國史編纂委員會) 第12卷 810·811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別集 第3輯 326∼328·699面
- 朝鮮獨立運動(金正明) 第3卷 792∼794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