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1919년 3월 29일 경남 동래군 구포(龜浦) 장날을 이용하여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이곳의 독립만세운동은 경성의학전문학교(京城醫學專門學校) 학생인 양봉근(楊奉根)이 고향으로 내려와 구포면 서기 임봉래(林鳳來)를 만나 서울과 평양(平壤)의 독립만세운동 소식을 전함으로 계획되었다.
3월 27, 28일 박영초(朴永初), 이수련(李守蓮) 등의 집에서 임봉래, 유기호(柳基護), 윤경(尹涇) 등은 회의를 거듭한 끝에, 구포 장날인 3월 29일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다. 그리하여 교대로 밤을 세워가며 독립선언서와 소형 태극기 수 백매씩을 제작하였고, 대형 태극기와 ‘대한독립만세’라고 쓴 깃발을 만들었다.
3월 29일 정오, 그들은 구포장터에서 1,000여 명의 시위군중에게 미리 제작한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나누어주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전개하였다. 그때 김용구는 솔선하여 선두에 나와 태극기를 흔들며 시위를 주도해 갔다.
또한 김용구를 비롯한 시위군중 1,200여 명은 구금된 인사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주재소로 돌진하여 주먹과 몽둥이로 주재소 유리창을 파괴하고 또 투석으로 대항하였다.
그는 이 일로 붙잡혀, 1919년 5월 6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소위 보안법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8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釜山·慶南 3·1運動史(3·1同志會, 1979) 56·357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3卷 313面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己未3·1獨立運動紀念碑(1990. 8. 15 建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