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탑동공원 (塔洞公園) 독립만세 시위 (獨立萬歲示威) 에 가담하여 불란서영사관 (佛蘭西領事館) 앞에서 시위장면 (示威場面) 사진을 해외 (海外) 에 첫 보도 (報道) 케 한 후 (後) 영덕 독립 거사 (盈德獨立擧事) 에 참가하고 징역 1년 6월형 (月刑) 을 언도받고 복역 후도 기독교 목사 (基督敎牧師) 로서 8.15광복시 (光復時) 까지 삼애주의 (三愛主義) 를 제창 (提唱) 하여 민족독립 사상 (民族獨立思想) 을 고취 (鼓吹) 등의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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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취(鼓吹) : 의견이나 사상 따위를 열렬히 주장하여 불어 넣음
- 불란서영사관(佛蘭西領事館) : 프랑스 영사관
- 복역(服役) : 징역을 삶.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권(1986년 발간)
경상북도 영덕(盈德) 사람으로 기독교(基督敎)인이다. 1919년 3·1운동 당시 탑동공원(塔洞公園)의 독립만세시위에 학생대표로 참여하였다. 그는 당시 경성 성서학원(聖書學院)의 학생대표로서 탑동공원 독립만세 시위에 참여하고, 프랑스 영사관 앞에서의 시위장면 사진을 처음 해외에 보도케 한 후 독립선언문을 가지고 귀향하였다. 그 후 영덕군내의 기독교 대표와 사회 각층의 인사들에게 고향의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도록 권유하였으며, 3월 8일 수백명의 시위군중 선두에 서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관공서와 일본인 가옥을 파괴하다가 체포되었다. 그리하여 이 해 6월 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1년 6개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영덕교회의 목사로 재직하면서 「나라사랑·하나님사랑·동족사랑」이란 삼애주의(三愛主義)를 제창하여 민족독립사상을 고취시키는 등 독립운동을 계속 전개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77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174면 ·이갑성 입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