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5권(2003년 발간)
경북 의성(義城) 사람이다.
1919년 3월 16일 의성군(義城郡) 안평면(安平面) 대사동(大司洞)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이곳의 독립만세운동은 3월 11∼12일 대사교회 교인인 이화실(李華實)ㆍ이종출(李鍾出)ㆍ김옥돈(金玉頓) 등을 중심으로 논의가 시작되었다. 이들은 3월 15일 일요일 낮 예배를 마치고 최종논의를 하고, 저녁에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정하였다. 이화실과 김옥돈은 이 사실을 이이경(李利景)ㆍ이만준(李萬俊)ㆍ배세태(裵世泰)ㆍ이맹준(李孟俊)ㆍ이수원(李守元)ㆍ정갑이(鄭甲伊) 등의 마을사람들에게 알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태극기를 만들었다.
드디어 이날 저녁 7시경, 마을 뒷산에서 교인 및 마을 주민 60∼70명이 모여 독립만세를 불렀다. 군중들은 태극기를 흔들고 동네를 행진하며 만세를 부르다 밤 10시경에 해산했다.
이렇게 3월 15일 대사교회를 중심으로 시작된 안평면 만세시위는 19일까지 계속되었다. 15일에 이어 16일에는 새로운 동지 김길도(金吉道)와 최상근(崔相根) 등이 가세하면서 시위군중의 사기는 더욱 높아졌다. 16일 밤 8시경, 대사동 마을 앞에 모인 시위군중 50∼60명은 독립만세를 외치며 면소재지인 창길동까지 시위행진을 벌였다.
이날 밤 김익휘도 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김익휘는 이화실로부터 "만세운동을 하면 조선이 독립될 수 있다"는 설명을 듣고 이에 찬동하여, 동민들과 함께 만세를 부르며 면소재지인 창길동까지 행진하였다.
그는 이 일로 붙잡혀 1919년 5월 20일 대구지방법원 의성지청에서 소위 제령(制令) 7호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1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名籍表(大邱監獄, 1919)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3卷 376∼378面
- 3ㆍ1運動實錄(李龍洛) 760∼764面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