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6권(2021년 발간)
1910년 8월 29일‘한일병합’을 당하자 박영철은 당시 일본 총리에게‘병합’을 반대하는 「견책서(譴責書)」를 보냈다. 주요 내용은 “도착하는 즉시로 극간(極諫)하여 속히 한국 황제의 지위를 복위시키고, 또한 한국 황제의 호를 복위시켜 명치(明治)로 하여금 또한 천지간에 죄인이 되는 것을 면하게 하라”는 것이었다.
또한 박영철은 비슷한 시기에 일제의 초대 총독 데라우치(寺內正毅)에게 「삼차서(三次書)」를 보냈다. 세 번째 보내는 청원서라는 뜻을 지닌 이 문서에서 박영철은 강제 ‘병합’의 부당성을 지적했다.
이후 박영철은 통감부에 압송돼 일본에 끌려갔다가 돌아왔다. 귀국 후에도 일제를 향한 비판 활동을 계속하다가 주재소에 체포돼 악형을 받으면서 옥고를 치렀다. 이후 출옥하였으나, 고초를 겪은 후유증 탓으로 순국했다.
정부는 202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견책서(譴責書)(박영철(朴永哲), 1910. 10. 29)
- 보령 항일의사 남계 박영철(보령문화, 2017) 제26집, 36~37, 39~40, 47~50, 64~65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