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6권(2021년 발간)
경상남도 거제도의 통영군 이운면 일대는 어장이 풍부해 일찍부터 일본 어민들이 많이 이주해 살고 있었다. 이들 일본어민들에 의해 한국민의 어업권은 송두리째 빼앗긴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이에 이곳 주민들의 항일정신이 높았으며 지역 곳곳에서 만세시위가 벌어졌다.
1919년 3월 28일 경상남도 통영군 읍내에서 약 150여 명의 군중이 만세시위를 벌였는데 이것이 이 지역 소요의 시작이었다. 4월 2일에도 한 차례 시위가 있었다. 또한 3일에는 경상남도 통영군 이운면에서 옥포리에 사는 주종찬(朱宗讚)이 주동해 ‘대한독립만세’라고 쓴 깃발 7개를 옥포리시장에 세우고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에 많은 군중이 호응해 만세시위가 벌어졌다. 그러나 급히 출동한 일본 경찰의 탄압으로 시위는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6일에는 옥포리(玉浦里)에서 시위운동이 있었다. 도병두는 6일 아주장터에서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했다가 체포됐다.
도병두는 1919년 4월 18일 부산지방법원 통영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정부는 2020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3) 제6집 558~559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3권 286~28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