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7권(2022년 발간)
1938년 4월 경상남도 부산부의 동래고등보통학교(東萊高等普通學校)에 입학하였다. 동래고등보통학교는 같은 해 일제의 ‘조선교육령(朝鮮敎育令)’ 개정으로 동래중학교(東萊中學校)로 개칭되었다.
일제는 1937년 중일전쟁을 도발한 이후 ‘국가총동원법(國家總動員法)’을 제정하여 우리 민족의 인적, 물적자원을 가혹하게 수탈하였다. 학생들에게도 군사훈련을 강제하였다. 그 일환으로 1940년 11월 23일 부산부, 마산부(馬山府), 진주군(晉州郡) 지역의 학생들을 동원하여 ‘제2회 경남학도 전력증강 국방대회(慶南學徒戰力增强國防大會)’를 개최하였다. 여기에는 일본인 학교도 포함되었다.
부산 공설운동장에서 개최된 전력증강 국방대회에서 각 학교가 경기를 벌였다. 그러나 일본인 심판관들은 무리하게 동래중학교 학생들을 실격시키는 등 일본 학교에 유리한 편파판정으로 일관하였다. 결국 우승이 동래중학교에서 일본인 학교인 부산중학교로 뒤바뀌어 발표되었다.
편파적이고 민족차별적인 대회 운영에 격분한 동래중학교와 부산제2상업학교 학생들은 대회 종료 후 일본인 교사를 구타 응징하고 시가행진에 돌입하였다. 훈련 목총을 멘 학생들을 앞세우고 정렬하여 부산 공설운동장에서 시내까지 시위행진을 벌였다. 학생들은 경남지구 위수사령관(衛戍司令官)이며 대회 심판장인 일본군 대좌(大佐) 노다이(乃台)의 관사를 습격하여 파괴하였다.
동래중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강우중은 이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이로 인해 같은 해 12월 25일 무기정학을 당하였으며 이후 퇴학당하였다.
정부는 2021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매일신보(每日新報)(1940. 11. 24, 11. 25)
- 학적부(學籍簿)(동래중학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