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5권(2020년 발간)
이혜근은 1885년 12월 30일 경기도(京畿道) 개성(開城)에서 이명섭의 장녀로 출생했다. 개성여학당(開城女學堂)를 수학하고, 1905년 3월 함경남도 북청(北靑) 출신의 주영섭(朱榮燮)과 결혼 후 러시아 연해주로 갔다. 1919년 2월 개성 호수돈여숙에 재학중인 여동생 이봉근(李鳳根)에게 독립운동에 대비하라고 했다.
이혜근은 1919년 3월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新韓村)에서 기존의 부인회를 ‘부인독립회(婦人獨立會)’라고 개칭하고 각 지방에 지회를 설치하는 등 간부로서 활동했다. 3.1운동 이후 북간도의 철혈광복단(鐵血光復團)은 대규모 군자금을 마련하고자 했다. 1920년 1월 4일 최계립(崔桂立) 등이 용정촌(龍井村)에서 약 15리 떨어진 동량어귀(東郞於口)에서 조선은행 회령지점에서 용정으로 오는 현금 15만원을 탈취하였다.
거사에 성공한 최계립 등은 일제의 감시망을 피해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으로 가서 무기를 구입하려고 하였다. 1920년 1월 31일 밀정 엄인섭(嚴仁燮)의 밀고로 최계립 등이 유숙하던 숙소에 일본 경찰이 들이닥쳤다. 윤준희 등 3명이 체포되어 헌병대로 압송되었다. 최계립은 총상을 입고 피를 흘리며 탈출하여, 채계복(蔡桂福)의 집에 도망갔다.
이혜근은 채계복의 집에서 총상을 입은 최계립의 오른팔에 박힌 탄환을 빼고 치료를 해주었다. 그녀는 최계립에게 “나는 이 철을 영원히 보존하여 두었다가 조선이 독립된 후에 기념하겠다.”고 말하였다고 한다.
1920년 3월 이혜근은 이의순(李義橓)·채계복 등과 함께 부인독립회에 간호부(看護婦) 속성과(速成科)를 설치했다. 그 목적은 간호사 양성에 두었다. 이 후 그녀는 독립운동을 하다가 부상을 당한 독립군을 치료했으며, 국내를 오가며 독립운동을 지원했다고 한다. 1988년 9월 9일 서울의 자택에서 향년 103세로 별세했다.
정부는 2019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독립신문(獨立新聞)(1920. 3. 30)
- 해외의 한국독립운동사료(Ⅻ):러시아편-독립군(獨立軍)의 수기(手記)(국가보훈처, 1995) 312~313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