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5권(2020년 발간)
1929년 11월 3일 전라남도 광주(光州)에서 광주학생운동이 발생했다. 각지에서 동조시위가 들불처럼 일어났다. 나주(羅州)의 나주농업보습학교 학생인 유찬옥(柳贊玉)과 신간회(新幹會) 나주지회 및 나주청년동맹 회원인 박공근(朴恭根) 등은 동조시위를 계획했다.
당시 나주농업보습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이창신도 사전 논의에 참여했다. 이들은 11월 27일 나주읍 장날을 기해 나주농업보습학교와 나주보통학교(羅州普通學校) 학생들의 연합시위운동을 전개하기로 약정했다. 유찬옥이 원고를 작성하고 이창신은 농업보습학교 사무실에서 항일 격문 2천부를 제작했다. 그는 11월 27일 농업보습학교 학생들에게 격문을 배포했다. 학생들을 이끌고 선두에 서서 가두시위를 주도해 갔다. 이들은 나주군청을 거쳐 나주시장으로 행진하며 격문을 살포하고 “조선민중 만세”, “조선학생 만세”를 외쳤다.
그는 1930년 2월 10일 나주장날에도 원복준(元福準) 등과 함께 나주농업보습학교와 나주보통학교 학생 200여 명과 함께 ‘만세시위운동’을 벌였다. 이로 인해 경찰에 체포되어 조사를 받았다. 학교는 그를 정학처분을 시켰다.
정부는 2019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광주지방법원:1930. 3. 5)
- 광주항일학생사건자료(光州抗日學生事件資料)(강재언, 1979) 258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