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고승천은 1908년 7월 제주도가 일본인의 손에 들어간다는 소문을 제주군수 윤원구(尹元求)로부터 전해 듣고 의병을 일으킬 뜻을 품었다. 1909년 2월 25일 조병생(趙丙生)의 집에서 창의(倡義)의 구체적인 계획을 논의하고 거사일을 3월 3일로 정하였다.
김재돌은 고승천·김만석 등과 함께 의병에 참여하였고 의병장으로 고승천과 이중심을 추대하여 관덕정(觀德亭)에서 의병을 일으키기로 하였다. 그는 고승천 등과 함께 2월 25일 영락리(永樂里)에 이르러 의병 20여명을 가담시키고 신평리(新坪里) 등지에서 300여 명의 의병을 모집하였다.
이때 대정(大靜) 군수 김종하가 관군과 장정 30여 명을 동원하여 일본 경찰과 함께 의병활동을 차단하였다. 2월 28일 고승천과 김만석은 체포당하고 나머지 의병은 지휘부를 잃어 흩어지게 되었다.
정부는 2018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독립운동사자료(국사편찬위원회, 1984) 제13집 747, 748, 752, 753, 761면
- 폭도(暴徒)에 관한 편책(編冊)(제주경찰서장:1909. 3. 6)
- 제주항일독립운동사(濟州抗日獨立運動史)(제주도, 1996) 70, 79, 81, 402, 403, 406면
- 이도(二徒)2동지(洞誌)(이도2동지편찬위원회, 2009) 202, 209면
- 제주 항일인사 실기(북제주군 북제주 문화원, 2005) 278~279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