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경남 합천 출신으로 1908년 경남 합천(陜川) 등지에서 의병으로 활동하였다.
1907년 대한제국의 군대 해산 이후 해산 군인이 의병에 합류함으로써 의병부대의 전술·전략은 크게 발전하였고, 항전의 범위도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특히 13도창의대진소(十三道倡義大陣所)의 서울진공작전 이후 의병은 전국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거병하여 항전하였다. 당시 경상남도와 전라도 접경지대에는 전라도의 김동신부대(金東臣部隊)와 경상도의 문태서부대(文泰西部隊) 등이 전라·경상 도계(道界)를 넘나들며 활동하였다.
김판용은 1908년 4월 8일 경남 합천우편취급소(陜川郵便取扱所)를 습격하여 파괴한 의병 약 50명의 일원이었다. 이 때 합천군 순사주재소 순사 3명이 출동하여 약 1시간 동안 교전하였다. 이 전투에서 의병측은 3명이 전사하고, 5명이 부상하는 손실을 입었다. 당시 22세의 김판용은 일본경찰의 칼에 찔린 채 퇴각하다가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7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韓國獨立運動史資料(國史編纂委員會) 제10권 義兵篇ⅲ 237면
- 陜川暴徒襲來에 關한 第4報告(秘收305號-11, 1908.4.15)
- 陜川暴徒襲來에 關한 第3報告(秘收305號-9, 1908.4.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