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정재홍은 1907년 대한자강회(大韓自彊會) 인천지회의 회장으로 활동하였고 2월경 인천항 신상회사(紳商會社)에서 단연동맹회(斷煙同盟會)를 조직하여 국채보상운동에 참가하였다. 또 사립소학교의 건립을 추진하여 천기의숙(千起義塾)을 설립하여 교육계몽에도 힘썼다.
1907년 6월 30일, 정재홍은 서울 북서(北署) 농상소(農商所)에서 열린 박영효 귀국 환영식에서 이토[伊藤博文]가 모임에 올 것으로 생각하여 그를 죽이고 여러 사람 앞에서 당당하게 자살함으로써 충의에서 일어나는 분한 마음을 풀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토 히로부미가 오지 않자, 뜻을 이루지 못했으니 살아서 돌아갈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끝내 스스로 총을 쏘아 세상을 떠났다. 이때 그의 손가방에서 국문으로 쓴 유서와 사상팔변가(思想八變歌), 생욕사영가(生辱死榮歌)가 나왔는데 그의 독립을 위한 의지와 기개를 잘 보여주고 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7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황성신문(1906.12.19, 1907. 2. 2, 2. 21, 3. 16, 5. 3, 7. 1)
- 騎驢隨筆(송상도) 84면
- 경향신문(1907. 7. 5)
- 大韓每日申報(1907. 5. 16, 7. 2)
- 공립신보(1907. 8. 2)
- 梅泉野錄(황현) 제5권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7권 145~147면
- 大韓季年史(鄭喬) 제8권 122~126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