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경남 진양(晋陽) 사람이다.
1919년 4월 3일 경남 진양군 이반성면(二班城面) 창촌(倉村) 장터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평소 항일의식이 투철하던 김기업은, 3·1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는 상황에서 3월 22일 이웃의 수곡면, 3월 25일에는 문산면 등지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고향인 이반성면에서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뜻을 세웠다.
그리하여 그는 주위의 청년들을 대상으로 동지를 규합하는 한편 거사일을 창촌 장날인 4월 3일로 정하고, 시위에 필요한 태극기와 깃대를 제작하였다.
그는 거사 당일에 이르러 미리 준비한 태극기와 깃발을 흔들면서 독립만세를 선창하였고, 이에 수백의 군중들이 호응하면서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그는 시위대를 이끌고 면내 각처를 다니며 시위를 전개하였는데, 일제의 탄압으로 시위는 해산되고 말았다.
이 때 그는 일제의 포위망을 피해 만주로 망명할 계획 아래 함북 웅기(雄基)까지 갔으나 그곳에서 일경에 붙잡혔다.
그는 이 일로 1919년 6월 30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국제신문(1994. 7. 8)
-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국사편찬위원회) 별집 제5집 412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