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1931년 4월 창립한 양산농민조합(梁山農民組合)에 가입하여 양산지역 농민운동에 참여하였다. 양산농민조합은 고율의 소작료 징수문제와 고리대금업 철폐, 최저 임금 제정, 문맹퇴치 등을 위해 활동하였다. 1931년 10월 농민조합은 흉작임에도 불구하고 지주들이 고율의 소작료를 징수하려 하자, 동양척식주식회사와 이에 결탁하는 지주들에게 항의문을 발송하여 개선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오히려 일제 경찰이 농민조합 간부진을 검거하자 농민들의 항일의식은 더욱 고양되었다.
1932년 2월 양산농민조합 정기총회에서 전병건(全秉健)이 집행위원장으로 선출된 가운데 소년부와 청년부가 설치되었다. 이 때 김태근은 소년부에 속하였다. 소작료 분쟁이 전년부터 이어지는 가운데 양산농민조합원들은 무고하게 수감된 조합원들을 구하기 위해 양산경찰서를 습격하였다. 일제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조합원이 사망한 후 농민들의 반발은 더욱 커져 3월 17일 일경에 붙잡힌 인원만도 170여 명에 달하였다. 김태근도 이때 일경에 붙잡혀 징역 10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7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釜山地方法院:1932. 10. 13)
- 동아일보(1932. 3. 20)
- 判決文(大邱覆審法院:1932. 12. 27, 4. 8)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14집 244~247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