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6권(2006년 발간)
빈농의 가정에서 출생한 그는 1924년 경북 안동(安東) 풍산소작인회(豊山小作人會)에 참가하여 농민운동을 전개했다. 1925년 2월 28일 소위 업무방해로 체포되어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1927년 이래 조선공산당(朝鮮共産黨)에 가입한 그는 풍산소작인조합(豊山小作人組合) 집행위원으로 농민의 권익을 옹호하고 일제의 지배체제를 변혁하려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조선공산당은 1927년 4월 중 신간회에 대한 정책으로 ‘신간회는 민족주의자와 공산주의자의 협동전선이기 때문에 각 지방의 공산주의자를 동원하여, 신간회원인 노동자·농민을 따로 경제적으로 조직하여, 무산계급적 교양훈련을 실시하고, 이들 무산계급부대로 하여금 그 회 안에서 무산계급적 입장을 취하게 해야 비로소 그 주도권을 쟁취할 수 있다’는 정책을 수립하였다. 이에 따라 11월 대구달성공원(大邱達成公園)에서 홍보용(洪甫容)이 전국 당대회에 출석할 경북대표 대의원으로 선정되었으며 또 도내에 각각 야체이카를 수립하였는데 그는 풍산지역을 맡았다.
그는 ‘제4차 조선공산당사건’에 연루되어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체포되어 1930년 11월 징역 2년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東亞日報(1925. 4. 27·5. 7, 1930. 11. 29)
- 現代史資料(姜德相) 제29권 107·108·140·145면
- 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신간회연구(이균영, 1993) 604면
-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국사편찬위원회) 별집 제6권 19·75면
- 日帝侵略下韓國三十六年史(國史編纂委員會) 제9권 603면
- 韓國共産主義運動史(金俊燁·金昌順, 1986) 제3권 290·291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