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옥고(獄苦) : 옥살이를 하는 고생.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6권(2006년 발간)
제주지역의 농민운동과 사회운동을 주도하며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1930년 제주에는 신재홍(申才弘)의 주도로 항일비밀결사 혁우동맹(革友同盟)이 결성되었고, 1931년 5월에는 혁우동맹이 조선공산당 제주도야체이카로 개편되었다. 그는 제주도야체이카에서 신재홍 등과 함께 농민부를 맡았다.
농민 조직 확대에 힘을 쏟던 그는 1931년 11월 3일 신재홍·한원택(韓遠澤)·고사만(高仕萬) 등과 함께 김기생(金己生)의 집에서 농민조합을 설립했다. 그리고 이날 참석한 농민 수십여 명에 대하여, 그는 ‘농민의 피를 짜는 악질조합 반대, 종묘 강제 배포 반대, 무상부역 반대, 농민대중의 이익에 배치되는 면 행정 반대’ 등의 표어를 내걸고 농민들의 항일의식을 고취하였다.
그는 1932년 1월 제주도 해녀들의 권익을 위해 ‘제주도해녀투쟁’을 배후에서 지휘·조종하였다. 당시 관제조합인 해녀어업조합의 부정으로 해녀들이 극심한 피해를 보는 상황에서, 제주도 해녀들은 자생적으로 해녀회를 조직하고 부당한 해녀어업조합에 맞서 나갔다. 해녀투쟁은 특히 신재홍이 담당하는 구좌면(舊左面)에서 가장 활발하게 일어났다. 1932년 1월 7일과 12일 구좌면 세화(細化)장터에서는 1천여 명의 해녀들이 세화주재소의 저지를 뚫고 호미와 비창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채재오는 제주해녀투쟁을 배후 조종한 혐의로 일경에 체포되어 징역 10월을 받고 근 1년 4개월의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朝鮮日報(1932. 3. 4)
- 受刑人名簿(법무부, 1931∼1933)
- 判決文(大邱覆審法院, 1933. 6. 5)
- 東亞日報(1932. 12. 11, 1933. 2. 8·2. 21)
- 刑事事件簿(朝鮮總督府裁判所)
- 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