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6권(2006년 발간)
1919년 3월 1일, 이갑성(李甲成)은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학생 이용상을 자기의 집으로 불러 독립선언서 400매를 주며 이를 대구(大邱)와 마산(馬山)에 전달하도록 하였다. 3월 2일 마산에 도착한 이용상은 표정(俵町)에 있는 임학찬(任學讚)의 집에서 이상소(李相召) 등을 만나 독립선언서를 전하며 마산에서도 만세운동을 일으킬 것을 권유하였다. 이들은 3월 3일 무학산(舞鶴山)에서 열린 국장 망배식에서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만세시위를 벌였다.
마산의 2차 시위는 3월 21일 장터에서 전개되었다. 이날 오후 3시경, 장터 중앙에서부터 독립만세 함성이 터져 나왔다. 이어 3월 31일 장날에도 2천 5백여 명의 시위군중이 독립만세를 부르며 마산감옥으로 행진하였다. 4월 하순에는 마산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이 교내에서 봉기하였다.
이태룡은 이같이 잇달아 전개된 마산의 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가 일경에 체포되어, 1919년 5월 16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4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4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부산 경남 3·1운동사(사단법인 3·1동지회, 1979) 692∼695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