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명지면에 있는 사립(私立) 동명학교(東鳴學校) 교사 이진석(李鎭奭)은 당시 동창인 경성약학학교(京城藥學學校) 학생 김연복(金淵福)으로부터 「독립선언서」를 입수하였다. 이진석은 동창생 이규회·양왕석·정소목·지봉구·박두성 등을 규합하여 1919년 4월 10일 중리 명호시장 장날에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다. 4월 9일 밤 이진석은 양왕석과 철야작업으로 태극기를 만들고 「독립선언서」를 복사하였다.
4월 10일 이진석은 동지들과 동명학교 학생들을 중리 명호시장으로 비밀리에 동원시킨 후 장꾼이 많이 모여든 오후 2시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장꾼에게 나눠 주었다. 이진석이 태극기를 장대에 높이 달고 ‘독립만세’를 선창하자 약 50명의 군중이 일제히 여기에 호응하여 ‘독립만세’를 부른 후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그러나 일본 헌병들의 진압으로 만세시위를 오래 지속 할 수 없었다. 다음날 중심 인물들은 오후 10시 약 50명의 학생·농민을 동원하여 진목리에서 다시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그러나 일본 헌병의 무자비한 탄압으로 군중은 해산하였다.
이규회는 명지면의 4월 10~11일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1919년 5월 6일 부산지방법원(釜山地方法院)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공소를 제기하였으나 1919년 6월 19일 대구복심법원(大邱覆審法院)에서 공소가 기각되어 형이 확정되었다. 1919년 6월 19일 대구형무소(大邱刑務所)에서 석방되었다.
정부는 2018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判決文)(대구복심법원:1919. 6. 19)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3권 221면
- 한국독립운동의 역사(한국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2009) 제20권 266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