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규합(糾合) : 어떤 일을 꾸미려고 세력이나 사람을 모음.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5권(2003년 발간)
경북 안동(安東) 사람이다.
유연건은 1915년 이강래(李康來) 등과 함께 마건충(馬建忠)이 고종에게 차용한 은(銀) 20만냥을 받아, 이 자금으로 중국 간도에 '건북유한공사(建北有韓公司)'라는 단체를 조직한 뒤, 이 단체를 통해 미국 하와이 주재의 조선인과 연락해 국권회복을 도모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또 국권회복의 방안으로 만국평화회의 때에 원세개(遠世凱)를 통해 한국의 독립을 제의할 것을 계획하였다. 그리하여 이강래는 고종과 의친왕 명의의 위조인(僞造印)을 만들어 성명서·위임장·유시문을 각각 1통씩 작성하고, 유연건은 이를 가지고 지방으로 내려와 동지를 규합하고자 했다. 이 활동으로 유연건은 붙잡혀 1916년 12월 25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유연건은 1920년 8월 22일에 창립된 안동 불교청년회에 참여하였으며, 1921년 4월에는 노동야학부에서 교사로 활동하였다. 그리고 1921년 7월 조선노동공제회안동지회 제2회 총회에서 간사로 선출되었으며, 1925년 3월에는 길안청년회 혁신총회에서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또 그 해 11월에는 도산서원철폐운동집행위원이 되었다. 이 무렵 유연건은 조선지광(朝鮮之光) 안동지국기자·안동기자단 창립위원·안동청년연맹간부·화성회(火星會)간부 등을 역임하였다.
한편, 유연건은 1925년 예천형평사 습격사건이 일어나자 안동에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결성된 연합회의에 참석하고, 신문에 형평사 사건을 게재하였다. 이 활동으로 형평사를 공격했던 김석희(金碩熙)와 장수암(張守岩)에 의해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하여 징역 8월을 받았다. 이후 유연건은 1927년 길안청년회 집행위원, 1929년 신간회 안동지회 간사 및 서무장으로 활동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3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京城地方法院, 1916. 10. 28)
- 朝鮮日報(1929. 1. 25, 8. 14)
- 豫審終結決定書(京城地方法院, 1916. 8. 30)
- 안동 독립운동가 700인(김희곤, 2001) 197面
- 東亞日報(1921. 5. 1)
- 刑事事件簿(朝鮮總督府)
- 한국사회주의운동 인명사전(강만길·성대경, 1996) 296∼297面
- 判決文(京城覆審法院, 1916. 12.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