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일제 말기 일본의 패망을 확신하고 동료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김장룡은 1944년 3월 부산 제2공립상업학교를 다니던 중, 일본인 교사로부터 일본 해군 제51항공창에서 항공기 제작, 수리를 위해 중견 간부공원을 모집한다는 얘기를 듣고 이에 응시하였다. 그는 1개월간의 군사훈련을 받은 후, 경남 진해시(鎭海市)에서 하숙하며 항공창에서 근무하는 가운데 일제의 패망을 확신하고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한 활동을 하였다. 즉 항공창 내 한국인 공원들에게 일제 패망을 역설하고 정신무장을 독려하는 한편 태업(怠業)을 선동하였던 것이다. 1944년 7월 김장룡은 일본군에게 붙잡혀 진해경비대(鎭海警備隊) 군법회의에 회부되었다.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은 김장룡은 김천소년형무소(金泉少年刑務所)에서 옥고를 치루던 중 1945년 8·15광복과 함께 출옥하였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2007년에 건국포장을 수여하였다.
<참고문헌>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