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5권(2003년 발간)
경남 고성(固城) 사람이다.
1919년 3월 22일 고성군 고성읍(固城邑) 장터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이곳에서의 만세운동은 동경(東京) 정칙영어학교(正則英語學校)를 졸업하고 고향에 와있던 안태원(安太元)이 부산상업학교 학생이던 서주조(徐周祚)와 협의하여 주도하였다. 그들은 고성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의 거사 참가를 권고하여 3월 22일 고성읍 장터에서는 장꾼과 학생·기독교인·천도교인들이 합세하여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그러나 시위군중이 어시장 입구에 이르자 긴급하게 출동한 일본 헌병과 경찰에 의해 해산당하였다.
이때 김형정을 위시한 주동자들은 군중의 선두에서 만세를 외치다가 일본 경찰에 붙잡혔다. 특히 김형정과 김진만(金鎭萬)은 혹독한 고문을 받았으나 구사일생으로 위기를 모면하였다.
그는 이 일로 붙잡혀 1919년 5월 27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4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褒賞狀(固城郡社會事業協會, 1952)
- 釜山·慶南三一運動史(三·一同志會, 1979) 642∼643面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