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4월 3일 웅천면 마천리 면사무소 앞에서는 사립 계광학교 직원 주기용(朱基溶)과 학생들이 주도하는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오전 11시 무렵 약 500~600명의 군중이 모이자, 주기용 등은 태극기를 나누어주며 ‘대한독립만세’를 만세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들은 만세를 부르면서 웅천읍을 향하여 행진하였다. 도중에 참여자가 늘어나 약 3,000명으로 불어났다. 일본 헌병들은 거류민까지 총동원하여 총검으로 구타하는 등 만행을 자행하였다. 더 이상 시위를 이어갈 수 없었던 군중들은 오후 2시 반 무렵 흩어졌다.
김진찬은 4월 웅천면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가 체포되었다. 1919년 5월 20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3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마산형무소에서 풀려났다.
정부는 2018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수형인명부(受刑人名簿)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3권 251~253면
- 한국독립운동의 역사(한국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2009) 제20권 273~274면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