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5권(2020년 발간)
1931년 1월 15일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鴻山面)에서 이원인(李原人) 등 수십 명의 청년들과 함께 금강문인회(錦江文人會)를 조직했다. 여기서 노동야학(勞動夜學)과 농민강습소(農民講習所) 등을 활용해 농촌청년과 노동자를 혁명적으로 지도하여 농민조합과 산업별 노동조합을 조직하고자 했다. 6월중 혁명적 농민조합과 노동조합을 결성하기로 했다. 전영철(田泳喆)의 지도로 공산주의연구회(共産主義硏究會)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했으며, 그 지부(支部)의 사업으로 부여면(夫餘面) 등에 농민야학과 노동조합을 조직하고 강사를 파견하였다.
1933년 봄 무렵 공산주의연구회를 해소하고 4월부터는 홍산면 남촌리(南村里)에 있는 홍산노동조합(鴻山勞動組合)으로 들어가 활동하고자 했다. 하지만 홍산지역은 소작농민이 중심이 되는 곳이고 경찰의 단속도 심하여 홍산농민구락부연합회(鴻山農民俱樂部聯合會)로 조직을 변경했으며, 각 부락에 농민구락부를 설치하고 비밀리에 활동했다. 김재록은 대야구락부(大也俱樂部)의 일원으로 활동하였다.
1933년 8월 하순경부터 일본 도쿄(東京)에서 들여온 다수의 ‘불온’한 서적과 삐라가 왕래되는 것이 일제 경찰에 포착되었다. 9월 첫째 주 일요일이 국제무산청년데이(國際無產靑年Day)라서 그 준비의 일환이었다. ‘요시찰(要視察)’ 인물들에 대한 가택수색 과정에서 이 문서들이 발각되면서 충남에서는 드물게 50~60여 명이 검속되어 취조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9월 중순 충청남도경찰부에 체포되었다. 12월 7일 18명의 동지들과 함께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공주지방법원(公州地方法院) 검사국에 송치되었다. 같은 달 18일 불기소(不起訴) 처분을 받았다.
정부는 2019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동아일보(東亞日報)(1933. 9. 28, 10. 1, 12. 9)
- 조선중앙일보(朝鮮中央日報)(1933. 12. 4, 12. 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