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5년 경 (頃) 조선공산당 (朝鮮共産黨) 경상북도 (慶尙北道) 간부 (幹部) 인 정학선 (鄭學先) 의 지도에 따라 민족주의 및 공산주의 사상을 신봉하기 시작한 이래, 1926년 5월 동아 (東亞) ·조선일보 (朝鮮日報) 기자 (記者) 및 영일청년회위원 (迎日靑年會委員) 등과 함께 포항경찰서 (浦項警察署) 에 체포되어 3일간 구류된 바 있으며 동년 (同年) 11월 중순경 조선공산당 (朝鮮共産黨) 에 입당하여 이재우 (李載雨) 등과 동당 (同黨) 포항 (浦項) 야체이카를 조직하여 1927년 8월경 까지 활동하였고, 1930년 9월 신간회 (新幹會) 영일지회 (迎日支會) 대표회원 (代表會員) 으로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징역 8월에 집행유예 (執行猶豫) 3년을 받은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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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김화섭은 1924년 12월 포항 청년회관 건립에 참여하였고, 1925년경 조선공산당 경상북도 간부인 정학선(鄭學先)의 지도를 받아 일본제국주의 타파를 위해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26년 5월 28일 동아·조선일보 양 지국장 및 기자, 영일청년회 위원 및 회원 10여 명과 함께 포항경찰서에 체포되어 3일간 구류되고, 30일에 경주검사국으로 압송되어 심문을 받고 곧 이어 방면되었다. 1926년 11월 중순, 조선공산당에 입당하여 1927년 8월경까지 활동하였다. 이후 1930년 9월 신간회(新幹會) 영일지회 대표회원으로 선발되어 활동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김화섭은 1931년 8월 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6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新幹會代表會員 選擧狀況에 關한 件(京鍾警高秘 第14794號1930. 10. 11) 思想에 關한 情報綴 10
- 判決文(大邱地方法院:1931. 8. 5)
- 時代日報(1926. 6. 3)
- 東亞日報(1931. 8. 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