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경북 성주(星州) 사람이다.
그는 1919년 4월 2일 경북 성주군 성주읍내(星州邑內)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성주읍내의 만세시위운동은 유림과 기독교 계열의 인사들이 각기 추진하다가 공동으로 연대하여 연합만세 시위로 전개되었다. 먼저 유림 속에서는 송인집(宋寅輯)·이기정(李基定) 등에 의해 주도되었다. 이들은 만세운동의 소식을 접하자, 유림세력도 만세시위에 적극 동참할 것을 결의하고, 군내(郡內)의 유림을 규합하여 4월 2일에 거사하기로 정하였다.
한편 대가면(大家面) 옥화동(玉化洞) 교회에서는 유진성(兪鎭成) 목사가 중심이 되어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마침 유림측에서도 만세시위를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공동으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다. 그리하여 양측의 긴밀한 협의 아래 계획이 추진되어, 기독교측은 읍내 뒷산에서, 유림측은 장터에서 일제히 호응하기로 거사 계획을 세웠다.
거사 당일인 4월 2일 오후 1시 경, 계획대로 경산동(京山洞) 관제묘(關帝廟) 뒷산에 모여 있던 기독교도들이 먼저 성주시장을 향하여 독립만세를 외쳤고, 이와 때를 같이하여 시장에서 대기중이던 60명의 유림들은 3,000여 명의 시위군중의 선두에 서서 독립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때 이판성은 시위군중의 앞에 서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에 놀란 일경은 총을 쏘며 시위군중을 저지하려고 하였다. 그들이 쏜 총에 부상자가 발생하자 일시 시위군중들이 후퇴하였으나, 이날 밤 10시경까지 계속해서 독립만세 시위를 계속 전개하였다. 그후 그는 일제의 대대적인 검속으로 붙잡혔다.
1920년 2월 28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으로 징역 8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9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判決文(1920. 3. 20. 大邱覆審法院)
- 判決文(1920. 2. 28. 大邱地方法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3卷 465∼468面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