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5권(2020년 발간)
북제주군 조천면(朝天面)에서 조천공립보통학교(朝天公立普通學校)를 졸업했다. 1934년 4월 상순경 김원근(金元根)·부생종의 지도 아래 비밀결사 함덕독서회(咸德讀書會)를 조직했다. 10월경까지 김두성(金斗性)과 함께 20회에 걸쳐 「프롤레타리아 경제학」 등을 교재로 연구하면서 동지 규합 활동을 전개했다. 10월 18일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1935년 2월 7일 기소유예(起訴猶豫)로 석방되었다.
이후 전시체제기에 이른바 ‘군사에 관한 조언비어(造言飛語)’를 유포했다는 이유로 한 차례 더 구속되어 재판을 받았다. 1940~1941년경 이웃에 사는 이노우에 츠요시(井上烈)에게 “이번에 지원병을 모집하고 있는 것을 보아도 상당히 병대(兵隊)가 부족한 게 아닐까” 등의 이야기를 했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1941년 10월 27일 광주지방법원(光州地方法院) 제주지청(濟州支廳)에서 이른바 ‘육군형법(陸軍刑法) 위반’으로 금고(禁錮) 6월을 선고받고, 1942년 4월 29일에 출옥했다.
정부는 2019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광주지방법원 제주지청:1941. 10. 27)
- 제주항일독립운동사(제주도지편찬위원회, 1996) 646, 690, 691, 709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