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경북 안동(安東) 사람이다.
그는 1925년 대구 사립 교남학교(嶠南學校) 고등과에 입학하였으나 중도퇴학한 후 향리에서 농업에 종사하던 중 안동청년동맹(安東靑年同盟) 임하지부(臨河支部)와 신간회(新幹會) 안동지회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그후 그는 1931년 7월 안동지역 청년운동의 부흥을 위하여 안상윤(安相潤)·권중택(權重澤) 등에 의해 조직된 비밀결사 안동콤그룹에 가입하여 반제부(反帝部)의 책임자로 선임되었다. 또한 동 단체의 세포조직으로 임하(臨河)그룹을 조직하고 동지규합과 사회주의 사상 및 항일의식을 고취하는 등 활동하였다. 안동콤그룹은 인쇄직공조합을 세력권하에 두고 여성투사 양성을 위해 여자부(女子部)를 설치하는 등 치밀한 조직체계를 갖추고 있었다.
김후식은 임하사방공사(臨河砂防工事) 인부들의 파업을 계획, 추진하였으나 목적을 달성하지는 못하였다. 또한 적색농민조합 반제동맹의 각 부문에 편입시키기 위한 인재양성을 목적으로 마르크스강좌회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고 활동하였다.
그는 이 일로 인하여 일경에 체포되어 1년 1월여의 옥고를 치른 끝에 1934년 7월 3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으로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4년을 받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0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1934. 7. 2. 大邱地方法院)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東亞日報(1933. 7. 15)
- 朝鮮日報(1934. 7. 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