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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공자정보

수형기록
관리번호 960134
성명
한자 朴鎬鍾
이명 없음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본적
액자프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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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국내항일 포상년도 1996 훈격 대통령표창
1930년 겨울부터 경남(慶南) 진주(晋州)에서 야학회(夜學會)를 설립하여 활동하는 한편 1932.10.1 조삼수(趙三壽) 등과 더불어 농민조합(農民組合) 결성의 선행조직으로 농민위원회(農民委員會)를 조직키로 하고 동지 규합에 힘쓰다가 피체되어 징역1년 집행유예3년을 받기까지 7월여의 옥고를 치른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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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경남 진양(晋陽) 사람이다.

진주제일보통학교(晋州第一普通學校) 재학 중, 3·1운동이 일어나자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1926년 경에는 일본 대판으로 건너가 직공으로 일하면서 노동운동에 투신하였다. 1930년 경, 귀국한 그는 고향에서 야학회를 설립하고 농민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

1931년 7월 일제가 만주를 침공하며 안으로는 식민지통치체제를 더욱 강화해 가는 상황에서, 그는 사회주의 사상에 입각한 농민운동을 치열하게 전개하였다.

1932년 9월 진주지역에서는 송기호(宋畿鎬)·조삼수(趙三壽) 등이 주동이 되어 조선공산주의자 진주지방협의회가 결성되었고, 그 산하에 농민위원회 . 노동위원회 . 학생위원회 등이 비밀리에 설치되어 있었다. 이때 박호종은 농민위원회에 가입하였으며, 금산면(琴山面) 책임자로 활동하였다.

박호종은 비밀결사 조직을 위해 금산면에서 농민을 규합한 후, 진주읍내 남강(南江)에서 회합을 가졌다. 또 같은 해 11월 그가 사재를 털어 설립한 인쇄소에서 항일 격문을 인쇄하여 배포하였다.

그러던 중 그는 붙잡혀 7월 여의 옥고를 치른 끝에 1933년 7월 31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소위 치안유지법으로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6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1933. 7. 31. 釜山地方法院 晋州支廳)
  • 韓國共産主義運動史(李起夏) 1411·1412面
  • 思想月報(1933. 10. 15) 第3卷 第7號 9·11∼20面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도움말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순번 성명 이명 출신지 관련사건
1 박호종 자 : 성칙(聖則), 호 : 만촌(萬村) 경남 진주(晉州) 진주군 만세운동

묘소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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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정보 1
묘소구분 안내
산골 유골을 화장하여 산이나 강, 바다 등에 흩뿌려 묘소를 특정하기 어려운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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