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제주(濟州) 사람이다.
1918년 10월 5일 강수오는 제주도 남제주군(南濟州郡) 좌면(左面) 법정사(法井寺) 승려들이 중심이 되어 일어난 항일 무력시위에 참가하였다. 이 무장시위는 김연일(金連日)·강창규(姜昌奎) 등 불교 승려와 태을교(太乙敎:일명 仙道敎로 普天敎의 前身)의 지도자 박주석(朴周錫) 등이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하여 일어난 것이다.
이들은 제주도 내의 일본인 관리의 처단과 일인의 구축을 주요 행동 방침으로 정하고, 무력에 의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강수오는 법정사 승려 강창규의 친동생으로 비밀결사에 적극 참가하였으며, 동지들의 규합에도 힘을 쏟았다. 그리하여 같은 해 10월 5일, 일차로 신도 30여 명을 동지로 규합한 가운데, 김연일을 불무황제로 칭하고 박주석을 도대장(都大將)으로 선출함으로써 진용을 정비하였는데, 이때 강수오는 반수(班首)의 책임을 맡았다. 도대장 이하 각 군직을 명함으로써 대오(隊伍)를 편성한 이들은 이후 제주도내 각처의 이장들에게 격문을 배포하면서 세력 확대에 전력을 기울였다.
이들의 노력으로 제주도 각처에서는 400여 명이 합류하였으며, 이들은 항일시위군의 주력이 되었다. 강수오는 시위군의 앞에 서서 서귀포(西歸浦) 호근리(好近里)로 진격하는 한편 일경의 연락을 차단하기 위해 시위군과 더불어 전선을 절단하여 각 주재소를 고립시킨 다음 중문 주재소를 급습하였다. 시위군은 순식간에 주재소를 파괴·소각하였으며, 미처 도망가지 못한 일경 3명을 포박하고, 무고하게 구금되어 있던 13명의 구금자들을 석방하였다. 또한 시위군은 식민지 수탈의 전위 역할을 맡았던 일본 상인(商人)들도 공격하여 민족독립의 의지를 드높였다. 그러나 이들은 곧이어 출동한 일본군에 의해 이틀만에 붙잡히고 말았다. 그는 이 일로 붙잡혀 모진 고문을 받다가 후유증으로 1918년 12월 27일 옥중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6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高等警察要史(慶北警察部) 265·266面
- 刑事事件簿
- 日帝侵略下韓國36年史(國史編纂委員會) 第4卷 206面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