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8권(2023년 발간)
1930년 8월 이후 함경남도 흥남에서는 이문홍(李文弘)과 한사빈(韓士斌) 등이 한국의 독립, 사회주의 실현을 목적으로 적색노동조합의 조직 운동을 계획했다.
보통학교를 중도 퇴학하고 농업에 종사하던 이창주는 1930년 8월부터 함경남도 함주군 흥남읍 조선질소비료공장 직공으로 근무했다. 1931년 1월에는 함흥부 함흥합성고무공업소의 직공이 되었다. 같은 달 이영호(李永浩) 등과 신사상 선전과 노동자 권익 보호를 위한 좌익노동조합 야체이카를 결성하고 선전부를 담당했다.
같은 해 5월 함주군에서 손명룡(孫明龍) 등을 만나 “기존의 파벌투쟁을 청산하고 조선 무산자(無産者)를 토대로 하는 비합법단체를 조직하고, 그 정예분자를 발탁하여 전선적(全鮮的) 통일조직을 결성하고 국제공산당의 승인을 얻어 조선공산당을 조직해야 한다”라고 독립운동 방략을 논의하였다. 그 결과 1932년 4월 체포되어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정부는 2022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동아일보(東亞日報)(1932. 4. 8, 4. 9, 4. 20)
- 매일신보(每日申報)(1932. 4. 20)
- 조선중앙일보(朝鮮中央日報)(1936. 5. 25)
- 사상월보(思想月報)(조선총독부 고등법원 검사국 사상부, 1934. 7. 15) 제4권 제4호 18면
- 사상휘보(思想彙報)(조선총독부 고등법원 검사국 사상부, 1934. 12) 제1호 27∼28면
- 수형인명부(受刑人名簿)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