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7권(2022년 발간)
1907년 고종이 강제로 퇴위당하고 대한제국의 군대까지 해산되자, 전국적으로 의병이 봉기하였다. 덕유산 일대에서는 문태수가 의병을 일으켜 영남·호남·호서 지역에서 활동하였다. 문태수는 1908년 2월 약 60명을 이끌고 전라북도(全羅北道) 무주(茂朱) 주재소를 습격하였다. 4월에는 의병 100여 명과 함께 장수읍(長水邑)을 습격하였다.
11월 이후 경상남도(慶尙南道) 안의(安義)와 거창(居昌)까지 가서 모병활동을 하였다. 1909년 1월에는 주민들을 약탈하는 도적들을 소탕하는 등 금산군, 영동군과 무주군 등지에서 활동을 지속하였다. 1909년 10월에는 옥천군(沃川郡)의 경부선 이원역(伊院驛)을 공격하여 철도 운행을 차단하였다. 이후에도 소부대로 분산하여 산발적인 유격전을 전개하였다. 영동군에 거주하던 김계표는 1909년 3월 문태수 의진에 속하여 화승총으로 무장하고 영동군과 금산군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이로 인해 일제에 체포된 김계표는 1909년 11월 13일 공주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폭동’ 죄로 징역 10년을 받았다. 1910년 칙령 제325호에 의하여 사면되었다.
정부는 2021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공주지방재판소:1909. 11. 13)
- 수형인명부(受刑人名簿)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