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8권(2023년 발간)
평소 항일의식이 투철하던 그는 1929년 4월 함경남도 원산부에서 원산청년학관(元山靑年學舘) 학생인 김부경(金富卿)·남수악(南壽岳)‧김창주(金昌柱)와 조국 독립운동에 대한 헌신을 결의했다. 이들은 비밀결사로 세홍단을 조직하고 조선총독부와 동양척식주식회사 등의 일제 기관 폭파를 계획했다.
이를 위한 폭탄 제조를 위하여 안변군 위익면(衛益面) 신고산(新高山)의 깊은 산중을 폭탄 제조 장소로 선정했다. 여러 차례에 걸쳐 장난감 권총의 지탄(紙彈) 20상자를 모으고 수렵용 산탄(散彈)과 봉랍(蜂蠟) 등을 준비하여 어린아이 머리 크기의 폭탄을 제작하였다. 그 외에 김창주는 활동 비용을 마련하고 김부경과 남수악은 추가 폭탄 제조를 위한 재료를 준비했다.
그러다가 5월 하순 경원선(京元線) 철도 연변의 삼방약수포(三防藥水浦) 백수관(白水舘)에서 기회를 모색하던 중에 일제 경찰에 발각되어 체포되었다. 이때 압수당한 폭탄이 6월 2일 안변경찰서에서 터져서 경찰서 사무실이 파괴되고 일본인 순사 3명이 중상을 입었다.
김조윤은 이러한 활동으로 인하여 1929년 7월 26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폭발물취체벌칙 위반’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2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형사사건부(刑事事件簿)
- 동아일보(東亞日報)(1929. 6. 1, 6. 5, 6. 16, 7. 25, 8. 17)
- 경성일보(京城日報)(1929. 6. 15)
- 조선일보(朝鮮日報)(1929. 6. 17, 7. 22, 8. 17)
- 조선신문(朝鮮新聞)(1929. 7. 29, 8. 17)
- 자료한국독립운동(추헌수, 1971) 제2권 378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