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7권(2022년 발간)
평안북도 벽동군에서는 천도교인들이 읍내에서 만세운동을 계획하고 각 면(面)의 천도교인들을 동원하였다. 1919년 3월 31일 오전 7시, 천도교인 약 200명이 벽동 읍내 남문 안에서 만세운동을 시작하였다. 이들은 벽동군수가 해산을 종용하자 잠시 흩어졌으나, 오후에 다시 집결하여 “조선독립만세”라고 쓰인 깃발을 들고 만세를 외쳤다. 일본 헌병과 보병이 진압에 나서자 시위 군중은 해산하였다. 이때 3명이 부상을 입고, 10명이 검거되었다. 김익호는 이날 만세운동에 참여한 사람들 앞에서 독립의 취지를 설명하고 200여 명과 함께 독립만세를 불렀다.
체포된 김익호는 1919년 5월 30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상고하였으나 1919년 7월 3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평양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21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고등법원:1919. 7. 3)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2권 478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