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3권(1996년 발간)
전남 순천(順天) 사람이다.
1929년 11월 3일 광주고보(光州高普)의 한국인 학생들과 광주중학 일본인 학생들의 충돌사건을 계기로 광주지역 학생들의 식민지 노예교육 철폐와 조선인 본위의 교육제도 확립, 언론·집회·결사·출판의 자유 획득 등을 슬로건으로 내세우며 학생운동을 전개하자, 동년 12월말 부산공립제2상업학교(釜山公立第二商業學校)에 재학 중이던 임기홍(林基弘)·문길환(文吉煥) 등과 함께 광주학생운동에 호응할 목적으로 항일계획을 진행하였다.
그리하여 동월 말경 문길환의 고향인 경남 고성(固城)으로 내려가서 등사판을 이용하여 「대한동포여 들어라」,「피압박 민족 대중에 격(檄)한다」,「일본제국주의를 멸망시키라」,「총독정치에 절대 반대하라」등의 격문을 작성하고 임기홍·문길환 등과 함께 별동대를 조직하는 등 준비를 갖추었다. 이윽고 1930년 1월 7일 밤, 광주학생항쟁에 동조 궐기해야 한다는 격렬한 요지의 격문을 부산2상(釜山二商) 전 학급, 전 학년의 책상마다 살포하였으며, 도립부산여고보(道立釜山女高普)에 들어가 격문을 투입하기도 하였다.
한편 동년 1월 19일 조선방직주식회사 직공들의 요구 관철을 위해 문길환 등과 함께 「대한독립 만세」,「타도 일본제국주의」,「반대 조선총독부정치」등의 전단을 작성하여 같은 달 21일 부산 시내에 약 150매를 살포하였다.
그 후 2월 9일 도참여관(道參與官)인 남궁영(南宮營)이 부산2상에서 광주학생운동을 왜곡되게 설명하고 일장 훈시를 하자, 퇴교맹휴에 돌입하고 가두시위를 추진하였으나 일경에 발각되어 붙잡히고 말았다.
1930년 7월 11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고 공소하였으나, 8월 7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신분장지문원지(경찰청)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9권 605·606면
- 광주학생독립운동사(광주학생독립운동동지회, 1974) 185∼189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