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4년 4월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제3차 전체위원회에 북미한인학생연합회 대표로 참석, 7월 북미학생회 사교부 부장 등으로 활동하였으며, 1940년부터 1944년까지 여러 차례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함.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6권(2021년 발간)
이진묵은 1936년 12월 고국을 떠나 이듬해 1월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오클랜드 국어학교에서 한인 2세들에게 국어를 가르치는 활동을 시작했다. 이와 동시에 오클랜드 한인교회 주일학교 교장으로도 선임되고, 1937년 2월 28일 오클랜드 한인교회에서 열린 제18주년 3.1운동 기념식에 참석해 3.1운동 당시 국내의 상황에 대해 연설했다.
1940년대에 들어 이진묵은 북미대한인유학생총회(北美大韓人留學生總會, The Korean Student Federation of North America)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1943년 5월 이 총회의 서부지회 이사에 임명됐으며, 같은 해 10월에는 부회장이 됐다.
1944년 4월 재미한족연합위원회(在美韓族聯合委員會) 제3차 전체위원회에 북미대한인유학생총회 대표로 참석했다. 같은 해 7월 이 총회의 샌프란시스코지부 사교부 부장을 역임했다.
1943년 7월 1일부터 이진묵은 미국 전쟁정보국에서 근무하며, ‘미국의 소리(VOA)’ 한국어 방송과 대일선전 방송을 통해 미국이 일본과 벌인 심리전에 가담했다. 1944년에는 이진묵을 미국 전략첩보국(OSS) 산하 야전침투훈련부대(FEU) 신병으로 배치하는 것이 논의됐으나 실현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2020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신한민보(1937. 1. 28, 3. 4, 8. 19, 1943. 5. 6, 7. 15, 10. 14, 12. 16. 12. 23, 1944. 3. 9, 4. 13, 7. 27)
- 해외의 한국독립운동사료(24):미주편(美洲編)(6)(국가보훈처, 2001) 131~132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