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6권(2021년 발간)
1919년 3월 14일 오후 4시경 장진 고토리에서 장진 지역 최초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이호순은 한영태(韓永泰) 등의 독립만세운동 계획에 호응해 수백 명의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고 헌병주재소를 공격하는 등의 활동을 했다. 시위 군중을 향해 헌병들이 칼과 몽둥이를 휘두르며 폭행을 가하자, 이에 흥분한 시위 군중들도 맞서서 저항했다. 이에 헌병들은 군중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했고, 시위 군중들이 헌병주재소로 몰려들자 일본헌병대는 이들을 강제로 해산시켰다. 이호순은 이 과정에서 체포됐다.
이호순은 1919년 7월 1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소요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정부는 2020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함흥지방법원 이시카와 검사의 3.1운동 관련자 조사 자료(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Ⅰ 62, 63, 66, 116, 117, 227~231, 278~279면
- 함흥지방법원 이시카와 검사의 3.1운동 관련자 조사 자료(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Ⅱ 148, 149, 157, 302~304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