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6권(2021년 발간)
1938년 2월 공포된 (조선) 육군특별지원병제도가 4월부터 실시되자 이에 반감을 가지기 시작했다. 1939년 12월 10일 이태권은 마산(馬山) 시내 김종덕(金鍾德)이 운영하는 문화이발소에 갔다. 이 자리에 함께 있던 김형우(金炯宇)란 자가 육군특별지원병에 지원한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이태권은 생활상 어려움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육군특별지원병에 지원한 것에 대해 반문하며 “어떤 이유로 일본인이 나갈 곳에 조선인이 지원하는가? 조선인의 조국은 조선이다. 그런데 일본을 위해 어떤 이유로 지원까지 해서 전쟁에 나가는가? 이러한 자는 조국을 알지 못하는 자이다”라며 비난했다. 이어 일제의 한국인에 대한 ‘국민학교’교육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이태권은 이로 인해 체포됐다. 1940년 3월 12일 부산지방법원(釜山地方法院) 마산지청(馬山支廳)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 육군 형법(陸軍 刑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선고받았다.
정부는 2020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1940. 3. 12)
- 사상휘보(思想彙報)(조선총독부 고등법원 검사국 사상부, 1940. 3) 제22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