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7권(2022년 발간)
1929년 11월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나자 전국에서 이에 호응하여 동조시위와 동맹휴학 등이 전개되었다.
최이선은 1930년 전라남도 목포부 정명여학교 고등과 4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2월 초 정명여학교 학생들도 시위에 나설 것을 계획하고 학우인 강안식(姜安息)·서금복(徐金福) 등과 시위를 준비하였다. “2천만 우리 동포 제군에게 격(檄)함”이란 제목의 격문 수천 장과 표어가 적힌 대형 적기(赤旗)를 제작하였다. 격문은 등사판이 없어 한 장씩 묵지(墨紙)에 써서 만들었다. 고등과 학생은 인원이 적으므로 보통과 5~6학년 학생들도 포함하여 2월 7일 아침 조회 시간을 마치고 시위하기로 계획했다.
시위 계획을 주도한 학생들은 2월 6일 밤에 모여 7일 밤 2시까지 회의하며 시위운동을 논의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계획이 누설되어 7일 아침에 경찰에 체포되고 말았다. 최이선은 고초를 겪고 12일에 풀려났다. 같은 해 4월에는 근우회 목포지회의 정기대회에서 집행위원에 선임되어 여성운동과 민족운동 분야에서 활약했다.
정부는 2021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중외일보(中外日報)(1930. 2. 8, 2. 9, 2. 14, 4. 13)
- 동아일보(東亞日報)(1930. 2. 9, 2. 10, 2. 13, 2. 15, 4. 14)
- 조선일보(朝鮮日報)(1930. 2. 10, 2. 12, 4. 14)
- 광주항일학생사건자료(光州抗日學生事件資料)(조선총독부 경무국, 1979) 258면
- 기려수필(騎驢隨筆)(송상도, 1955) 411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