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용강군에서는 3월 2일 읍내를 시작으로 크고 작은 만세시위가 잇달았다. 3월 6일에는 진남포에서 서쪽으로 50리 떨어진 광량만에서 1,000여 명이 만세시위를 전개하다가 오후 2시경에 흩어졌다. 그런데 밤이 되자 또 다시 40~50명이 주재소 부근에 모여 횃불을 올리며 ‘독립만세’를 불렀다. 평양에서 파견된 보병부대의 발포로 1명이 죽고, 7명이 다쳤다.
이날 해운면에서도 만세시위가 있었다. 해운면 용반 1리 주민 70여 명이 만세를 부르며 온정리 시내로 행진하였다. 밤이 되어 40여 명이 부근 산에 모여 주재소를 불사르고 광량만까지 진격하자는 계획을 논의하던 중, 경찰과 군대가 급습하여 발포하는 바람에 1명이 죽고 1명이 다쳤다.
아들 김병준(金炳俊)은 3월 6일 서재(書齋)로 갔다. 김태황은 아들을 찾기 위해 밤 11시 무렵 서재로 갔다. 그런데 군인과 경관이 서재를 둘러싸고 총격을 가하였다. 그 자리에서 순국하였다.
정부는 2018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고등법원:1919. 6. 7)
- 한국독립운동의 역사(한국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2009) 제19권 235~236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