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5권(2020년 발간)
1854년 경상북도 안동군 임하면(臨河面) 천전리(川前里)에서 아버지 김진린(金鎭麟)과 어머니 함양박씨 사이에서 4남 3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19세 때인 1872년 석주(石洲) 이상룡(李相龍)과 결혼하여 고성이씨 가문의 임청각(臨淸閣) 종가댁 맏며느리가 되었다. 1910년 일본에 의해 국권을 빼앗기자 이상룡은 가족 모두를 이끌고 만주 망명을 결정하였다. 1911년 1월 5일 이상룡이 먼저 떠났다. 김우락은 아들 내외 등과 함께 1월 25일 국경을 넘었다. 2월 7일 회인현(懷仁縣) 항도촌(恒道村)에 도착했다.
김우락은 만주로 온 이후인 1911년 10월 「해도교거사(海島僑居辭)」라는 한글 가사를 썼다. 그녀가 쓴 가사의 내용은 남편인 이상룡이 망명을 결정할 무렵의 일을 기록하고 있고, 만주에 망명하여 정착하기까지의 과정을 상세히 적었다. 또한 이 가사에는 여성의 몸이지만 독립을 위해 힘을 보태고자 하는 자신의 심경도 드러내고 있다. 「해도교거사」외에 그녀는 1914년 말 고국에 있는 형제자매, 특히 여형제들에게 편지 글을 대신해서 「간운사」라는 가사를 썼다.
김우락은 만주로 온 이후 남편 이상룡이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지속할 수 있게 가산을 팔았다. 1932년 5월 이상룡은 길림성(吉林省) 서란(舒蘭) 소성자(小城子)에서 순국을 하고 말았다.김우락은 남편의 시신을 만주에 묻었다. 일본 경찰의 감시를 피해 밤에만 걸어 석 달 만에 서울에 도착하여 안동에 들어갔다. 1933년에 79세의 나이로 생애를 마쳤다.
정부는 2019년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해도교거사(海島僑居辭)(김우락 : 1911. 10. 6)
- 아직도 내 귀엔 서간도 바람소리가(개정판)(허은, 2010) 102, 120, 122, 123, 147, 148, 155, 156, 168, 170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