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1926년 4월 당시 조선여자고학생상조회 집행위원으로 활동하였다. 일본 당국은 항일의식을 지녔다 하여, 이른바 ‘사상요시찰인(思想要視察人)’으로 지목했다. 1927년 7~8월 근우회 집행위원으로서 박신우(朴新友) 등과 함께 지방순회강연에 연사로 활동하였다.
이후 일본 도쿄로 건너갔다. 1929년 당시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에서 도쿄조선노동총동맹(東京朝鮮勞動總同盟)의 상임위원 및 부인부장(婦人部長)으로 활동하다가 김두용(金斗鎔) 등과 함께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1930년 4월 4일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도쿄지방재판소(東京地方裁判所) 검사국으로 송치되었다. 6월 불기소(不起訴)로 석방되었다.
이후 국내로 돌아와 혁명적 노동조합운동을 전개하였다. 1931년 10월 장시원(張時源) 등과 함께 ‘함흥적색노동조합 사건’으로 함흥경찰서(咸興警察署)에 체포되었다. 함흥경찰서 유치장에서 고초를 겪다가 병세(病勢)가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다. 같은 해 12월 말경 병보석(病保釋)으로 석방되었다.
정부는 2018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검찰사무(檢察事務)에 관한 기록(3)
- 사상문제(思想問題)에 관한 조사서류(調査書類)(3)
- 매일신보(每日申報)(1927. 7. 24)
- 동아일보(東亞日報)(1931. 10. 17)
- 중앙일보(中央日報)(1931. 12. 30)
- 소화특고탄압사(昭和特高彈壓史)(고려서림高麗書林, 1986) 제6권 51~52면
- 재일조선인관계자료집성(在日朝鮮人關係資料集成)(국학자료원國學資料院, 1994) 2(1)권 138~139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