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1919년 3월 중순 경성의학전문학교 학생 양봉근이 구포(龜浦)로 내려와서 구포면 서기 임봉래(林鳳來)를 만났다. 그는 서울·평양의 3.1운동 소식을 상세히 전하고 「독립선언서」를 전달하면서 만세시위를 촉구하였다. 임봉래는 3월 27~28일경 류기호(柳基護) 등과 논의하여 3월 29일 구포시장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정하였다.
3월 29일 정오 무렵이 되자 구포시장으로 1,000여 명의 군중이 모였다. 만세시위가 전개되자 일본 경찰은 12명의 주도자를 체포하여 주재소에 구금하였다. 이에 맞서 주재소로 향한 군중들은 곤봉 등으로 주재소 입구의 유리창 및 의자를 파괴하고, 순사 등에게 타박상을 입혔다. 이날 구포시장 만세시위는 농민·상인·노동자가 주도하였으며, 43명이나 체포되었다.
곡물상인 김학준도 구포시장 만세시위에 참가한 것으로 보인다. 만세시위에 참가했다가 체포된 김학준은 1920년 2월 17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대정(大正) 8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징역 6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부산형무소에서 출옥하였다. 그러나 옥고의 여독으로 50여일 만에 자택에서 순국하였다.
정부는 2018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3.1운동피살자명부(1953년)
- 한국독립운동의 역사(한국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2009) 제20권 256~257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