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함경북도 경성공립고등보통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던 1932년 1월 26일경 최증륜(崔增崙)의 권유로 이동명(李東明)과 함께 비밀결사 독서회에 가입하였다. 이 독서회는 같은 달 16일경 경성군 오촌면(梧村面) 성북동(城北洞)에 있는 최증륜의 자택에서 현원봉(玄元鳳)과 함께 조직한 것이다. 당시 경성공립고등보통학교 내에는 몇 개의 비합법 독서회가 결성되어 활동하고 있었다. 모두 윤병권(尹炳權)이라는 인물의 지도를 받고 있었다.
김창준이 참가한 독서회 역시 윤병권의 지도 아래 최증륜을 책임자로 결성된 것이었다. 동교생 이동명과 김병옥(金炳玉)도 여기에 참가하였다. 이들과 함께 매주 금요일 김병옥 방에서 회합을 가졌다. 윤병권으로부터 『조선문제(朝鮮問題)』 등의 저서로 강의를 듣고 학습하였다.
1932년 5월 2일 윤병권 등과 함께 항일 격문을 작성하여 경성읍내의 청년학생들에게 배포할 계획을 세웠다. 6일 윤병권 등과 함께 독서회의 사업으로 ‘공산주의를 선전하고 동지 획득을 목적으로 한 뉴스’라는 제목을 붙인 격문 등을 작성하였다. 7일 김병옥 방에서 등사판으로 인쇄하였다. 그리고 8일 밤 경성군 오촌면 승암동(勝岩洞)·수성동(壽城洞) 등지에서 경성공립고등보통학교나 농업학교 학생들의 기숙사를 비롯한 여러 곳에 배포하였다.
이들이 격문을 작성해 배포한 5월 초순은 우가키(宇垣一成) 총독이 한국 북부지방을 순시하던 때여서, 경찰병력의 경계가 여기에 쏠려 있는 틈을 타서 이러한 실천을 하게 된 것이었다. 뒤늦게 이를 알게 된 나남경찰서(羅南警察署)에서는 13일부터 대대적인 검거에 착수하여 무려 140여 명을 검거했다. 이때 김창준도 체포되었다. 이 사건이 이렇게 확대된 이유는, 독서회를 지도했던 윤병권 등이 당시 모스크바공산대학을 졸업하고 함경북도로 들어와 혁명적 대중조직운동을 전개하고 있던 장도명(張道明) 등의 ‘적색노동자협의회(赤色勞動者協議會)’라는 비밀결사와 연결되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당시 일제당국은 이 사건을 ‘비밀결사 적색노동자협의회 사건’ 또는 ‘함북공산당 재건협의회 사건’ 등으로 취급하였으며, ‘회령공산청년동맹(會寧共産靑年同盟) 사건’과도 연결시켰다.
1932년 7월 1일 청진형무소(淸津刑務所)에 수감되었다. 1년이 지난 1933년 7월 24일 청진지방법원(淸津地方法院)에서 예심(豫審)이 종결되었다. 11월 4일 이른바 ‘출판법 위반 및 보안법(保安法) 위반’ 등의 죄명으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같은 달 8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2018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조선중앙일보(朝鮮中央日報)(1933. 7. 28~31, 8. 2~3, 10. 27, 11. 7, 11. 12)
- 사상월보(思想月報)(조선총독부검사국, 1933) 제3권 제9호 11~23면
- 한국민족해방운동사자료집(韓國民族解放運動史資料集)(김경일, 1993) 제4권 475~477, 483~484면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동아일보(東亞日報)(1932. 10. 15, 10. 27, 1933. 10. 26)
- 매일신보(每日申報)(1932. 8. 8)

